2017. 2. 19. 19:07 | Comment




  “야.”

  “왜.”

  “널 보면 속이 안 좋아.”


  불러다 놓고 저게 할 말인가. 싸우자는 듯 건물 뒤쪽으로 불러내더니 험악하게 “야.” 부르는 것부터 츠키시마도 기분이 좋진 않았으나 “야.”는 그 뒤의 말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 보기 싫으니 배구부 나가라고?”

  “그게 아니라 널 보면 좀 울렁거린다고. 아무래도 널 좋아하는 거 같아.”

  “뭐?!”

  “지난주부터 그랬어. 한 주 참아보고 말하는 거야. 사귈래?”


  6개월을 애써 숨기고 숨겨온 마음이었는데. 울렁거리기 시작했다며 한 주 만에 고백하는 카게야마의 얼굴은 싫음 말고. 정도의 얼굴이라 고백을 받아놓고도 받은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거절은 못 할 자신을 알았다. 츠키시마는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돌아오는 주말은 카게야마가 츠키시마와 사귀게 된 지 백일이 되는 날이었다. 첫날부터 날짜를 센 건 아닌데 세 달쯤 됐나, 문득 생각하고 따져보니 토요일이 백일이었다. 츠키시마는 모르고 있겠지만 알게 된 이상 카게야마는 뭔가 하고 싶었다. 카게야마의 고백을 받아들이던 순간 츠키시마의 얼굴엔 자신이 봐도 피곤함만 가득했기에 며칠 지나지 않아 차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젠 츠키시마가 마음 없이 자신을 받아준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만큼 츠키시마도 자길 좋아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야마구치에게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음식점도 물어봤다. 야마구치는 질문을 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알겠다는 듯 웃으며 한 케이크 가게를 가르쳐주었다. 심지어는 잠시 기다리라고 카게야마를 세워두곤 약도까지 직접 그려와 건네주며 “주말은 좀 붐빌지도 몰라. 나도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 하며 묻지 않은 얘기까지 해주었다. 내가 주말에 간다고 말을 했던가? 카게야마가 생각하느라 미간을 찌푸리자 야마구치가 가볍게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카게야마는 의아했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야마구치의 약도는 짧은 시간 동안 그려온 것 치고 꽤나 자세했다.




  약속장소에 나온 츠키시마를 보자마자 카게야마가 츠키시마를 끌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츠키시마가 어딜 가는 거냐고 물어도 “맛있는 거 먹으러.” 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카게야마가 어디로 자신을 데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이 카게야마보다 츠키시마에게 익숙할 거라는 건 확실했다. 카게야마는 가끔 머뭇거렸고, 또 가끔은 속도를 늦추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위를 쳐다봤다. 처음 오는 길인 게 분명했다. 어딜 가려는 거지. 이 길이라면 내가 더 잘 알 텐데. “어딜 가는 건데, 왕님. 말을 해.” 츠키시마의 말에도 카게야마는 그저 따라오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여기야.”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뿌듯한 말투로 말이 나왔다. 야마구치가 그려준 약도를 통째로 외우긴 했어도 직접 찾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 때문에 조금 헤맸지만, 결국엔 제대로 찾아온 것이 기뻤다.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가게라고 했으니 당연히 츠키시마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카게야마가 츠키시마의 표정을 살폈다. 츠키시마는 이상한 얼굴이었다. 이젠 카게야마도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는, 기뻐하지만 썩 티가 나지 않는 그 얼굴은 분명 아니었다. 츠키시마는 가게 안을 슬쩍 들여다보고는 “다른 데로 가자.” 말해왔다. 


  “너 여기 좋아하잖아.”

  “…누가 그래.”

  “야마구치가.”

  “사람 많은 가게 싫어.”


  츠키시마의 말에 카게야마도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처음 야마구치에게 들은 대로 주말이라서인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가 앉을 자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저기 자리 있어.”

  “아무튼, 싫어. 다른 데로 가자.”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붙들고 온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케이크 가게까지 오래 걸어 와 힘이 든 것도 아니고, 케이크를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케이크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카게야마는 속상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와 만날 때 주로 카게야마가 좋아하는 음식점으로 이끌곤 했다. 카게야마가 그러자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랬기에 만난 지 백일이 된 지금까지도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음식점을 많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야마구치에게 물었고, 기념일에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가게를 직접 찾아 데려오고 싶었던 거였는데. 




  전날 야마구치가 히죽대며 웃더라니. 카게야마가 야마구치에게 제가 좋아하는 가게를 물었었나 보다. 카게야마가 사귀게 된 지 백일인 것을 기억해 이런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츠키시마도 물론 기쁘긴 했다. 하지만 츠키시마도 오늘은 조금 더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카게야마가 데려온 이 가게는 케이크는 정말 맛있지만, 손님이 많고 가게는 작았다. 손님의 수에 비해 가게가 작으니 테이블이 작고, 테이블 간의 간격이 좁은 것도 당연했다. 츠키시마는 좀 더 넓은 자리에서, 좀 더 사람들과 떨어져서 카게야마와 손을 잡고 있고 싶었다. 까짓 백일이 뭐라고, 이런 날짜를 기념하는 것부터가 한심스럽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카게야마와 사귀게 되니 챙기려고 하지 않아도 기억이 났다. 츠키시마는 말없이 자신을 따라 걷는 카게야마를 데리고 새로 알아둔 카레 가게를 향해 걸으며 작게 한숨 쉬었다.




  츠키시마가 한숨을 쉬었다. 이 가게가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가게가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정말 사람 많은 가게로 온 게 잘못이었나? 다른 때라면 직접 물어봤겠지만 카게야마도 생각이 많았다. 츠키시마가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카게야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가게라고 했는데.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야마구치의 말을 듣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건 그 이유였다.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가게니까. 카게야마는 카레를 먹는 게 좋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카레를 좋아하는 츠키시마와 먹는 건 더 좋았다. 츠키시마가 자기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츠키시마가 좋아하는 걸 함께 먹고 싶었다. 그런데 한숨까지 쉴 정도라니 뭐가 문제지. 화가 났나. 그러던 중에 츠키시마가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자.” 말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아 화가 난 건 아닌가 싶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봤다. 카레 가게였다. 


  “카레?”

  “응. 들어가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처음 본 곳이었다. 츠키시마를 따라 들어온 가게는 넓고, 아직 알려지기 전이라서인지 사람이 적었다. 구석진 곳에 앉고 나니 가게 안에 딸랑 둘 뿐인 기분이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시키고 나서야 카게야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은 비죽 튀어나와 있었으나 볼멘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기색도 아니었다. 츠키시마가 손을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테이블 위로 내밀어진 츠키시마의 손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네 손.” 츠키시마가 작게 말하자 카게야마가 제 손을 테이블 위로 턱 올린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손을 감쌌다가 위를 간질거리곤 깍지를 껴 잡았다. 카게야마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종업원이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카게야마가 손을 빼려 들었으나 츠키시마가 팔에 힘을 줘 놓지 않은 채 테이블 밑으로 잡은 손을 내리자 카게야마의 손도 잠자코 따라왔다. 츠키시마가 희미하게 웃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였다. 화가 난 것 같진 않은데 그다지 밝은 표정도 아니었다. 츠키시마도 조금 신경이 쓰였다.




  카레는 맛있었다. 츠키시마는 잡은 손을 내내 놓지 않았다. 한 손을 잡은 채 밥을 먹는 건 생각보다 더 불편했지만 츠키시마가 놓지 않는 손을 먼저 놓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오게 된 셈이라 더 그랬다. 츠키시마는 언제나처럼 많이 먹진 않았으나 억지로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카게야마는 카레를 다 해치운 후 천천히 제 메뉴를 먹는 츠키시마를 쳐다봤다. 역시 사람이 적은 가게를 찾아봤어야 했나. 츠키시마가 카레를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카게야마와 눈을 맞췄다. 


  “그만 나갈까?”

  “너 다 안 먹었잖아.”

  “배불러. 먹을 만큼 먹었어.”


  더 먹으라고 하고 싶었는데 츠키시마가 평소보다 많이 먹은 편인 건 카게야마도 알았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소화를 시킬 겸 조금 길을 걷다, 스포츠용품점에 들러 필요했던 물품을 몇 개 사고, 츠키시마가 살 것이 있다고 해 음반가게도 들렀다. 함께 서점에 들러 카게야마는 월간 배구를, 츠키시마는 문제집을 사고 나니 배가 고파 근처 라멘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카게야마는 내심 지금은 케이크 가게도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가보자고 말하긴 망설여졌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날이 어둑해져 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둘은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로 되는 건가, 잠시 생각했으나 카게야마가 생각한 건 케이크 가게가 전부는 아니었다. 둘이 헤어질 땐 늘 카게야마의 집 근처에서 헤어지곤 했기에 오늘만은 츠키시마가 타는 버스를 타고 츠키시마의 집 근처에서 내려 츠키시마가 들어가는 걸 보고 헤어지고 싶었다. 마침 츠키시마의 집 쪽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츠키시마. 너네 집 가는 버스 온다.”


  츠키시마가 힐긋 버스를 쳐다봤다. 


  “사람 많잖아. 다음 버스 탈래.” 


  척 봐도 앉을 자리가 없어 보이긴 했다. 카게야마도 그대로 버스를 보내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왕님.” 


  츠키시마가 카게야마를 툭 건드렸다. 카게야마의 집 쪽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츠키시마랑 같은 버스 탈 건데. 카게야마가 안 탈 거라고 말하려는 찰나 버스가 카게야마의 눈앞에 멈췄고, “뭘 정신 놓고 있어. 그러다 버스 놓쳐.” 츠키시마가 카게야마를 툭 밀어 버스에 태웠다. “내일 봐.” 카게야마가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는 사이 츠키시마만 인사한 채로 버스가 출발했다. 이게 아닌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된 지 백일이라는 것도 저 녀석은 모를 텐데. 버스가 그다음 정류장에 멈춰섰다. 카게야마가 급히 내려 뛰었다. 운이 좋다면 츠키시마도 아직 버스를 타기 전일 것이다. 


  카게야마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츠키시마가 막 버스에 올라타던 중이었다. 카게야마는 더 속도를 높여 겨우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워낙 키가 큰 녀석이라 버스 안에서 츠키시마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사람이 많다고 그냥 보낸 버스보다 더 사람이 많아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겨우 사람을 제치고 츠키시마의 옆에 섰으나 츠키시마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 많은 버스 싫다며.”


  투덜대듯 건넨 카게야마의 말에 츠키시마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온다. 놀란 얼굴이었다. 


  “왕님이 왜 여기 있어?”

  “왜는, 너랑 같이 가려고 내려서 뛰어왔다.” 또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기껏 먼저 온 버스를 보내고 카게야마를 보낸 후에야 버스를 탔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버스에 타고 있는 건지 츠키시마는 제가 귀신을 보는 줄 알았다. 오늘 내내 어쩐지 눈치를 보는 것 같긴 했지만 짜증이 난 것 같진 않았는데 기껏 뛰어와 츠키시마가 탄 버스를 쫓아 타 놓고 걸어오는 말에선 기분이 상한 티가 났다. “내려서 얘기하자.” 츠키시마가 카게야마의 손을 이끌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한적한 곳을 향해 걷자 조용히 따라오면서도 표정이 좋진 않았다. 


  “표정 좀 풀어, 왕님. 오늘 좋은 날인데.”

  “그러니까. 오늘 좋은 날인데 넌 꼭 그래야 했냐?”

  “내가 뭘 어쨌는데.”

  “그렇게 나랑 버스 같이 타고 가기 싫었냐고.”


  츠키시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얘기가 이렇게 가지? 카게야마가 일부러 데려간 그 케이크 가게를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않은 건 츠키시마도 조금 미안했다.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카게야마의 성의를 의도치 않게 무시한 것처럼 되어 내색하진 않았지만 미안했고, 또 오늘은 백일이니까… 평소보다 더 신경 쓰기도 했는데. 


  “무슨 말이야, 그게?”


  츠키시마의 물음에 카게야마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몇 번 퍽퍽 치더니 입을 열었다.


  “너랑 같이 버스 타고 너네 집까지 가려고 했는데 사람 많다고 버스 보내버리더니 나도 보내버렸잖아. 그러더니 너는 그다음에 더 사람 많은 버스 타고. 나랑 같이 타기 싫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속상한 듯 카게야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멍청한 왕님은 배구 할 때 말고는 머리를 쓰지도 않는 양 굴면서 꼭 이런 땐 엉뚱한 생각을 한다. 츠키시마는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츠키시마의 한숨에 카게야마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그건….”


  이걸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하나. 또 나오려는 한숨을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며 겨우 참았다. 츠키시마가 말을 잇지 못하자 카게야마가 “아니면 왜 말을 못 하는데.” 작아진 목소리로 따지고 든다. 이쯤 되니 츠키시마도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너 가는 거 보고 가려고… 그런 거고. 내 버스가 먼저 왔으니까.” 

  “뭐?” 여전히 조금은 험악한 말투였다.

  “…사람이 많아서 안 탄다는 건 핑계였다고.” 


  괜히 눈을 쳐다볼 수 없어 카게야마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는데 카게야마에게서 대답이 없다. 고개를 들자 카게야마의 얼굴은 언제 일그러졌었냐는 듯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너 좋아한대서 간 케이크 가게도 들어가 보지도 않고….”


  말투에서도 사나운 느낌은 사라졌다. 그저 조금 속상한 기색만 남은 말투에 츠키시마도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가게에선 너랑 손을 잡을 수가 없잖아.”


  카게야마가 츠키시마를 쳐다보자 츠키시마가 웃었다. 자주 보던 비뚜름하게 웃는 심술궂은 웃음이 아니라 기분 좋은 듯 빙그레 웃는 미소였다. 귀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애꿎은 땅만 차는 카게야마의 앞으로 츠키시마가 한 발짝 더 다가온다.


  “그게 신경 쓰였어?” 


  조금만 놀리는 듯한 말투였어도 아니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물어오는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 반박도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텐데. 입을 열면 오늘 속상했다고 줄줄 털어놓을 것 같아 카게야마는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 사이 츠키시마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그 가게는 아홉시에 문을 닫아. 평일 여덟 시쯤 사람이 제일 적고. 나도 그때 가서 케이크만 사 왔었어.”


  카게야마가 츠키시마의 얼굴을 보고만 있자 츠키시마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가자. 부 활동 끝나고. 여덟 시쯤.”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츠키시마가 다시 웃었다. “버스 탈까? 우리 집 가는 거.”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고개를 끄덕이는 게 고작이었다. 이래서야 츠키시마가 멍청하다고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앉을 자리가 있는 버스를 탔다. 오늘따라 카게야마가 귀여워 목 끝까지 올라오는 귀엽다는 소리를 수십 번 참아야 했다. 이상하게 조용해진 지금도 귀엽다는 소리를 들으면 발끈할 게 뻔했다. 버스에 타서는 둘이 나란히 앉는 자리에 함께 앉았다. 안쪽에 앉은 카게야마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6개월을 숨겨온 마음을, 자각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고백한 카게야마는 그 이후로도 제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으면서 츠키시마가 그 반만 표현해도 이렇게 부끄러워하곤 했다. 츠키시마가 슬쩍 손을 잡았다. 카게야마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했으나 바깥을 내다보던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근데 오늘이 무슨 날인데?”


  그제야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좋은 날이라고 했더니 그렇다며. 오늘이 무슨 날인데.”


  케이크 가게 앞에서만 해도 오늘이 백일이라는 걸 카게야마는 모를 거라고 확신했는데 이젠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모른다면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버릴 수 있게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카게야마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우리 오늘 백일이잖아. 넌 몰랐겠지만.”


  알 수도 있다, 고 생각했는데. 정말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니 어쩐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츠키시마는 모를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츠키시마가 오늘 카게야마를 신경 쓴 만큼 카게야마도 신경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알고 있던 거야, 왕님?”

  “아니면 내가 케이크 가게를 왜 데려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카게야마가 부끄러운 듯 툴툴대는 소리를 냈다. 


  “글쎄. 서민을 너무 좋아해서?”


  괜히 놀리면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제 웃음이 말과 달리 비웃는 듯한 웃음은 아닐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카게야마가 뭐라 하려는 듯 눈을 치켜뜨고 츠키시마를 쳐다봤다가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걸 보니 확실해 보였다. 츠키시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못하고, 잡은 손을 놓지도 못한 채 꼼지락대는 카게야마가 귀여웠다. 분명 내가 더 좋아할 텐데. 요령이 없어 자길 놀리지도 못하는 카게야마를 적어도 일 년은 더 즐길 수 있겠지. 츠키시마의 얼굴에 또다시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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