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리는 체육관 벽에 기대선 사쿠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곧 연습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이제 몸도 풀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쿠사는 체육관에 들어온 후 내내 잔뜩 골이 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정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코치님이 나오시는 걸 본 코모리가 슬슬 코트 쪽으로 가자고 하려던 참이었다.



   “짜증나.”


   갑작스레 들린 사쿠사의 목소리에 코모리가 “뭐가?” 물었지만 사쿠사는 답이 없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모리가 예민한 게 아니었다.

   유스 합숙이 시작된 지 사흘, 요 며칠 사쿠사는 이상하게 굴고 있었다.


 


 

사쿠사 키요오미 관찰일지




 

   코모리는 사쿠사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편이라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해도 함께 지내보면 알기 어려운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싫어하는 게 금방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이 그랬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바로 행동해 고민거리를 풀어내야 하는 성격이 그랬다. 그랬는데, 합숙 기간 사쿠사는 확실히 이상했다. 유스 합숙에 처음 온 것도 아닌데. 계속 무서운 얼굴로 어딘가를 주시하곤 했다. 지금도.


   “너 뭐 신경 쓰이는 거 있지.”

   “왜.”

   “표정 장난 아니라. 요즘 계속 그러잖아.”

   “내 표정이 뭐.”

   “거울 보여줘?”


   사쿠사가 됐다는 듯 팔을 휘휘 젓고는 이제야 져지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고 코트 쪽으로 걸어간다. 미간은 여전히 잔뜩 패인 채였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종종 더 날카로워지긴 했어도 며칠간 저 불편한 듯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건 그것과 미묘하게 다르다고 코모리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거슬리는 게 있는 것 같은 태돈데. 더러운 걸 피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코모리가 사쿠사의 옆으로 가 함께 걷자 사쿠사가 스치듯 코모리를 보더니 조금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머물다 다시 정면으로 돌아가는 시선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코모리도 얼결에 사쿠사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았다. 이번에 처음 유스합숙에 합류한 카게야마가 코트 위에서 가볍게 뛰고 있었다. 신기했다. 코모리가 아는 사쿠사는 시선 처리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할 만큼 처세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의식하지도 못한 채 본 건가.


   그러고 보니, 합숙에 오기 전부터 시라토리자와를 이긴 학교에서 온다는 카게야마가 못내 신경 쓰이는 듯 굴었다. 합숙이 시작한 첫날 바로 다가가 얘길 꺼낼 정도였고. 뭐, 약간 사쿠사를 긁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나쁜 의도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사쿠사도 크게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았는데. 코모리는 어느새 걸음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가 신경 쓰여?”

   “내가 걜 왜 신경 쓴다는 거야?!” 앞서가다 홱 뒤를 돈 사쿠사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험악해져 있었다. 말투에도 짜증이 묻어 있었다.

   “모르니까 물은 거잖아. 시라토리자와 이기고 온 게 신경 쓰여서 그래? 그거라면 합숙 끝나고 학교에서 다 같이 비디오 보기로 했잖아. 조금만 참아.”

   “…그런 거 아냐.”

   “그럼? 식당에서 들은 말? 그땐 카게야마도 너 어깨 안 좋은 느낌이라 조심하는 중인 거 몰랐잖아.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그러니까 애 좀 그만 노려 봐.”


   누가 보면 위협하는 줄 알겠어. 내가 다 무섭다. 코모리가 옆구리를 툭 치며 말을 잇자 사쿠사가 흠칫하곤 미간에 힘을 푼다. 사쿠사 성격상 신경 쓰는 거야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합숙 기간의 거의 반을? 그때 코치님의 부름이 들렸고 코모리와 사쿠사의 대화도 끊겼다. 사쿠사의 표정이 누그러진 걸 보면 코모리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은데. 근데 왜 뭘 놓친 것 같지? 코모리는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 뭔가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 이어진 연습에 다들 조금씩 지친 듯하자 코치님이 휴식을 선언했다. 사쿠사를 쳐다보니 그새 사람 적은 쪽에 자리해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아까만큼 못마땅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밝다고 할 수 있는 얼굴 또한 아니었다. 사쿠사의 시선을 따라가니 역시나 카게야마가 있었다. 코모리는 찬찬히 카게야마를 살피며 사쿠사에게 걸어갔다. 연습하는 내내 그렇게 날카로울 수 없을 것 같은 눈으로 공을 보더니 지금은 사쿠사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조금 멍한 얼굴로 앉아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또 그저 애 같았다.


   “카게야마 말이야. 토스 보기만 해도 대단한 거 알겠는데 그래도 후배라선가 보고 있으면 좀 귀엽더라.”


   연습 전 찌푸린 얼굴로 짜증난다고 말하던 사쿠사가 생각나 카게야마가 있는 쪽을 보며 일부러 말했다. 코모리가 온 걸 그제야 눈치챘는지 사쿠사가 코모리를 한번 힐긋 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사쿠사가 카게야마를 신경 쓰긴 해도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쿠사의 표정은 가끔 악의 없이 상대를 겁줄 때가 있었다. 과하게 신경 쓰는 건 사쿠사로서도 물론이고, 카게야마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식당에서 모습을 보면 크게 개의치 않는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카게야마는 유스 합숙엔 처음이니까. “그렇지 않아? 꽤 귀여운데.” 코모리는 일부러 가볍게 물으며 사쿠사의 옆에 앉았다.


   “…알아.”


   시꺼먼 남자애가 뭐가 귀엽냐는 대답이나 듣겠지만 저렇게 신경 쓰는 상태라도 조금 좋아지면 좋은, 뭐?


   “뭐라고?”

   “나도 안다고, 쟤 귀여운 거.”


   코모리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사쿠사가 지금 카게야마 보고 귀엽다고 한 게 맞아? 충격으로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에 코모리는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겨우 침착하고 사쿠사를 보니 사쿠사는 자기가 말해놓고 당황한 듯, 다시 기분이 상한 듯 한껏 찡그린 얼굴로 돌아온 상태였다.


   “왜 귀엽지?”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이 모양이다. 정말 모르겠는 건지, 모르고 싶은 건지 영 찝찝하다는 듯한 얼굴로 가만히 생각하는 사쿠사를 보고 있자니 코모리는 웃음이 나왔다. 그간 마음 쓴 게 후회되는 것까진 아니어도 약간은 허무해졌다. 지금 보니 그저 찡그린 얼굴이 아니라 조금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인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런 거였나.


   “여태 귀여워서 쳐다보던 거였나.”


   혼잣말처럼 뱉은 말이었으나 사쿠사의 어깨가 움찔한 걸 보면 코모리의 말을 들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대답 없이 벌떡 일어나 휙 가버린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었다. 저런 감정이라면 사쿠사에게 처음일 법도 했으니 이상하게 굴던 것도 이해가 됐다. “사쿠사! 그럼 그렇게 노려보면 안 돼!” 걸어가는 사쿠사의 등에 대고 코모리가 소리치자 사쿠사가 잠시 멈춰 섰다 다시 걸어가는 게 보였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쿠사가 보이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는데 이젠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코모리가 씩 웃었다.


 



   “쟤네 둘, 너무 붙어 다녀.”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멈추곤 불편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쉰다 싶더니, 또다. 지금은 점심시간이었고, 사쿠사와 코모리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쪽에선 카게야마가 치가야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그 날 이후로 사쿠사는 가끔 자신이 짜증난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포지션 체인지 연습 땐 미야가 공격을 성공시킨 카게야마의 허리 부근을 칭찬하듯 툭 친 걸 보고 쟤 지금 카게야마의 엉덩이를 친 거냐고 으르렁대더니 이젠 치가야와 카게야마가 붙어 다니는 것도 싫은 것 같았다. 하기야,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쪽이 사쿠사답기는 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래.”

   “…어떻게?”

   “합숙한 적 있다던데.”

   “쟤네 사는 데도 다르잖아.”

   “응. 근데 연이 닿아서 후쿠로다니랑 네코마랑 몇 학교 더해서 같이 했다나 봐.”

   “그때 뭘 했기에 저렇게 친해져.” 툴툴대는 말투가 부러움을 담은 것 같기도 해 코모리는 또 웃음이 나오려 했다.

   “정작 그땐 별로 안 친했나 보던데. 여기 와서 친해진 것 같았어.”

   “…쉴 틈만 있으면 같이 붙어있더라니.” 사쿠사가 혀를 찼다.

   “너 정말 카게야마 열심히도 보고 있었네.”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코모리와 대화중이었음에도 내내 언짢은 얼굴로 카게야마의 뒤통수만 죽어라 보고 있던 사쿠사가 이제야 코모리를 쳐다봤다.

   “치가야한테 들었어.”


   사쿠사의 얼굴이 묘하게 안심한 듯 풀어졌다. 설마 이거 질투한 건가? 카게야마와 코모리가 저 없는 곳에서 대화 나눈 줄 알고? 어이가 없는 것 이전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이렇게 짝사랑에 짜증내고 끙끙대는 사쿠사를 보는 게, 친구로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코모리는 조금 즐거웠다.


   사쿠사는 배구에 관련된 것에 있어서는 신경이 배로 예민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상관없는 것에 짜증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선배가 점수 낸 후배를 툭 치며 격려했다고 짜증을 낼 만한 사람도 아니고, 후배 둘이 같이 밥 먹는 걸 보고 괜한 성질을 부릴 사람도 아닌데. 근데 그러고 있는 사쿠사가 새로웠다. 코모리가 밥을 먹는 걸 멈추고 사쿠사를 쳐다보든 말든 사쿠사는 금세 시선을 돌려 카게야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무슨 좋아하는 사람 괴롭히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래도 소리 내 웃으면 사쿠사가 한층 더 성질내겠지. 코모리는 겨우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노려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사쿠사는 반응도 대답도 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코모리도 앞을 슬쩍 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동그란 뒤통수만 보이는 카게야마는 누가 뒤에서 절 열렬히 보는 줄도 모르고 밥만 먹고 있었으나 그 앞에 앉은 불쌍한 치가야는 사쿠사의 따가운 시선을 눈치챈 듯 안절부절못하고 이쪽을 힐끔대고 있어 조금 안쓰러웠다. 사실 눈치 못 채는 게 더 어렵겠지. 이렇게 형형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코모리는 대신 사과의 뜻을 담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 네가 좋아하는 카게야마 무서워서 도망간다.”


   며칠 지켜보니 무서워서 도망갈 거 같은 성격은 아닌 거 같긴 했지만.


   “뭐?” 사쿠사가 경악과 당황이 섞인 얼굴을 했다.

   “뭘 그렇게 놀라? 카게야마가 도망가는 게 무섭긴 한가 보네.”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뭐야, 이쪽이야? 티 낼만큼 다 내놓고 모르는 척을 하려는 거야, 저렇게 질투하면서 정말 모르고 있는 거야? 어느 쪽이든 코모리는 황당했다.


   “네가, 카게야마를. 더 안 숨기려는 것처럼 티 나게 굴었잖아.”


   사쿠사의 얼굴이 어딘가 복잡한 듯 구겨지더니 내렸던 마스크를 도로 올려 쓰고는 뭐라 작게 말했다.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마스크에 가려져 더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아는 줄 몰랐다고.”


   사쿠사가 카게야마 주변 인물들에게 하는 질투를 고스란히 봐온 코모리로선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노려보지 말라고 한 말은 뭐로 알아들은 거야….”

   “시비 걸지 말란 말인 줄 알았어.”


   그럼 내가 아는 줄도 몰랐으면서 내 앞에서 이렇게 군거라고? 코모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사쿠사가 옆에서 뭔가 말하고 싶은 건지 갈피를 못 잡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다. 반응을 보니 정말 몰랐던 것 같기는 한데, 사쿠사가 코모리의 눈치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이것도 좀 재밌었다. 하지만, “나는 응원하는 입장이니까 제발 그렇게 보지 좀 마.” 저런 눈빛을 계속 받으면 체할 게 분명했다.


 


 


   “짜증나.”


   어쩐지 이런 상황도, 이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연습경기가 끝나고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 동안 자유롭게 앉아 몸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코모리도 스트레칭을 하던 중이었는데 옆에서 사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모리는 사쿠사의 말을 듣자마자 즉각 고개를 들어 카게야마를 찾았다.


   사쿠사가 좀 더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땐 늘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이젠 코모리도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에게 누가 접근해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거나, 카게야마가 본인 보기에 다른 사람과 너무 붙어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카게야마를 만졌거나. 카게야마가 혼자 있다고 사쿠사가 다가가는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생각하며 찾은 카게야마는 아니나 다를까 미야에게 붙들려 있었다.


   “그냥 너도 가서 말을 걸어.”


   이제 합숙은 끝을 향해 가는데 저렇게까지 신경 쓰고 질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쿠사가 코모리는 슬슬 답답해지던 참이었다. 저런 모습을 보는 게 재밌는 건 재밌는 거고, 사는 곳이 다른 만큼 합숙이 끝난 후엔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데 대체 어쩌려는 건지. 코모리가 몇 번씩이고 말을 걸라고 해도 사쿠사는 못 들은 척 마땅찮은 얼굴로 카게야마를 보기만 할 뿐 대답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물어보는 게 좋겠지.”

   “뭘?!”


   사쿠사에게서 대답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코모리가 놀라 빠르게 묻자 사쿠사도 당황한 듯한 얼굴로 코모리를 쳐다봤다. 옆에 있던 걸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자기가 말해놓고 왜 저런 반응이야. 코모리가 가만 보고 있으니 “뭘.” 하고 도리어 물어온다. 이제 보니 물어봐야겠다는 말이 의지와 상관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것 같기도 했다.


   “물어보는 게 좋겠다며.”


   사쿠사가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또 고민에 빠지는 것 같았다. 사쿠사는 꽤 네거티브하리만큼 신중한 성격이다 보니 신경 쓰는 게 많긴 해도, 그걸 오래 담아 두기보단 바로 물어보거나 확인해두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사쿠사를 알아온 기간이 조금은 되는 코모리도 이토록 고민하는 사쿠사는 많이 보지 못했다. 평생 사쿠사 고민할 거 이번 합숙 동안 다 보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뭘 묻겠다는 건데? 전화번호?”

   “…몰라도 돼.”


   말할 것 같더니 몰라도 된다고 도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아, 재밌어하는 게 너무 보였나. 저렇게 나오면 당장은 입을 열게 할 방도가 없다. 코모리는 어깨를 으쓱이곤 사쿠사로부터 고개를 돌려 다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코모리는 바로 그날 밤 사쿠사가 물으려던 게 뭔지 알게 된다.


   “할 말 있으세요?”

   “어.”


   물을 마시러 복도에 나왔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걸 보고 있나. 그렇지만 본 이상 그냥 들어갈 수도 없지. 안 그래도 사쿠사가 안 보이기에 어딜 갔나 했는데 지금 보니 정수기 앞에 카게야마와 단둘이 서 있었다. 코모리는 걸음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모습이 보이지 않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카게야마가 할 말이 있냐고 묻는 걸 봐선 사쿠사가 방에 들어가려는 카게야마를 붙잡은 듯했다. 거리가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복도가 조용해 조금만 집중하면 대화를 듣는 덴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너.”

   “네?”

   “좋아하는 게 뭐야.”


   아니, 사쿠사. 그렇게 갑자기.


   “좋아하는 성격이나 외모는.”


   사쿠사는 카게야마가 대답할 새도 없이 질문을 몇 개 연달아 쏟아부었다.


   “여태 좋아했던 사람 있어?” “어떤 사람이야.” “혹시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건 아니겠지.”


   코모리는 이마를 짚었다. 저건 꼭 괴롭히는 것 같잖아. 하지만 그 사쿠사가 이 문제로 며칠간 고민했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런 대화는 밖에라도 나가서 하지. 밤이긴 했어도 아주 야심한 시각도 아니고 코모리가 지나가다 본 것처럼 누구도 지나다닐 수 있는 장소였다. 코모리는 괜히 초조해져 주변을 살피다 어깨에 힘을 풀었다. 생각해보니 사쿠사가 고민하다 마음먹고 자리를 만든 거라면 누가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코모리는 대화를 엿듣는 건 좋지 않다고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를 애써 뒤로 넘기고 귀를 기울였다.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난 확실히 알고 시작하는 게 좋아. 네가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지 알아야겠어.”


   그냥 고백을 하지. 아, 저게 사쿠사 나름의 고백인가. 근데 카게야마는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타입이요?”


   카게야마의 목소리엔 조금의 놀람도 없었다. 역시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코모리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둘은 서로를 보고 있느라 여전히 코모리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대답해 봐. 누굴 좋아했는지.”


   사쿠사가 말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표정을 구기는 게 보였다. 아마도 카게야마가 누굴 좋아했는지를 제 입으로 다시 묻는 것도, 떠올리는 것도 새삼 짜증이 난 듯싶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는지.”


   카게야마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별생각 없이 대답을 고민하는 걸 수도 있고,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 놀라거나 당황한 걸 수도 있었다. 앞에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 거리에선 카게야마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배구 잘하는 사람?”


   …전자였나 보다. 사쿠사는 아마도 그걸 묻은 게 아닐 텐데.


   “그거라면 내가 뭘 바꿀 필요 없겠네.”


   카게야마의 핀트 어긋난 대답에 한숨을 쉰 건 코모리 뿐이었나. 사쿠사는 흡족한 말투로 대답했다. 둘 다 옆모습만 보였지만 사쿠사가 저런 식으로 눈을 가늘게 뜨는 건 기분이 좋을 때 보이는 모습이었다. 잘 웃지 않는 녀석인데 입꼬리도 씰룩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쿠사가 물은 질문의 의도와 다른 의미의 대답인 건 나도 알겠는데 사쿠사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걸까. 코모리는 둘의 대화를 더 듣기를 포기했다. 더 들어봐야 앞으로도 비슷한 대화나 하겠지. 들을수록 코모리만 한숨을 쉬게 될 것이 뻔했다. 물을 마시러 나온 거였는데 물 생각도 없어졌다.


   발소리를 줄일 생각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걷는 코모리의 등 뒤로 “뭘 바꿔요?” “배구 잘 하는 사람이 좋다고 했지. 너, 그럼 나 좋아해?” 하는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생각의 흐름이 저렇게 난데없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래, 저렇게 빠진 거면 사쿠사가 알아서 하겠지.


   코모리는 왠지 조금 지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사쿠사가 카게야마를 신경 쓴 기간만큼 코모리도 둘을 주시하며 신경 쓰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코모리는 하품을 하며 그대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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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 생일 기념 카게른 합작 우리 토비오에 참여했습니다! 

너무너무 예쁜 합작 주소는 이쪽 -> http://deartobio.com/


올해도 생일 축하와는 관련 없는 내용이지만 생일 정말 많이 축하해 토비오! 진짜 많이 좋아해 T.T♡

늘 배구하며 행복하기를! 


제목 지어주신 로닛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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