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5. 19:26 |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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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게야마의 연인으로 지낸다는 건, 오이카와가 생각도 못 했던 여러 가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과도 의미가 통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삼사십 분 씩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와 놀아주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따지고 보면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와 사귀게 되고 함께 살게 된 것부터가 과거엔 생각도 못 했던 일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네가 오이카와 씨를 좋아해서 다행이야.”


   너는 내가 무슨 의도로 너랑 친해지려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밥 잘 챙겨주고 있으니 고양이도 신경 안 쓰려나. 오이카와는 벌써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밥을 주고 있지만 이름도 붙여주지 않은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면서 해도 짧아졌다. 오이카와는 여섯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어두운 밖을 잠시 보다가 목도리를 하나 더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해가 지니 바람도 더 매서웠다. 멋 부리겠다고 제법 신경 써 입고 나왔더니 몸이 시려 오이카와는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숨을 내쉬며 다시 폈다. 토비오는 슬슬 연습 막바지려나. 추워서인지 들떠서인지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 네, 오이카와 선배.


   학교 앞에 도착해 숨어있다 카게야마가 나오는 걸 보고 슬쩍 뒤로 따라붙어 전화를 걸자 요령 없이 그 자리에 멈춰 핸드폰을 찾는다. 그리곤 액정을 잠시 응시하다 단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토비오, 연습 끝났어?” 사실 이미 알고 있지만.

   - 네. 지금 막 나왔습니다.

   “집으로 바로 오는 거야?”

   - 네. 오이카와 선배는 집이십니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밖에서 거는 전화인 게 티가 날 텐데. 그저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화는 한껏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숨길 필요가 없어 좋았다.


   “글쎄. 토비오 뒤인 거 같은데.”

   “?! 오이카와 선배?!”


   적당한 거리까지 다가가 말을 걸자 카게야마가 깜짝 놀라 뒤를 돈다. 놀라 커진 눈이 꽤 볼 만했다. 


   “놀랐어?”

   “네.”

   “그렇게 좋아? 얼굴에서 다 보이네.”

   “...놀리지 마세요.”

   “그럼 싫어?”

   “다 보인다면서요.”

   “그래도 듣고 싶어.”

   “...좋아요.”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그 정도도 오이카와는 만족스러웠다. “데이트하자.” 오이카와가 훤히 드러나 있는 카게야마의 목에 가져온 목도리를 칭칭 감아주고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데이트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데이트 맞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잖아요.”

   “집 근처에선 데이트 못 하나?”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을 붙잡고 가볍게 입술에 뽀뽀한 후 떨어지자 카게야마가 당황해 주변을 살핀다. 그사이 더 어두워진 탓에 가까이에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더군다나 둘이 함께 사는 집 근처는 사람이 적었다. 대신, 카게야마의 말처럼 고양이가 많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려 익숙해진 골목을 살폈다. 마침 기다리던 고양이가 살금살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털이 검은 탓에 이런 저녁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웠다. 발견했을까?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카게야마의 시선이 고양이에 이르러 벌써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이카와 씨한테 밥 얻어먹으러 온 거지?”


   카게야마를 뒤로하고 미리 사둔 고양이용 사료를 적당히 앞쪽에 두자 고양이가 가만 멈춰 서서 카게야마를 힐끔 본다. 오늘은 오이카와만 있는 게 아니라 조금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가지 마, 고양아. 그간 오이카와 씨가 해온 노력이 있잖아, 그치? 고양이를 보며 비는 표정을 지은 오이카와의 뜻이 통했던 건지 고양이가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다가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작게 한숨 쉰 후 뒤를 돌아 카게야마를 쳐다보니 카게야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고양이만 보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와서 봐도 돼. 도망 안 갈 거야.”


   오이카와가 말을 건넸으나 듣고는 있는 건지 대답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 이끌자 그때서야 고양이를 향해 뻣뻣하게 움직인다. 표정 좀 풀어. 그러니까 도망가지. 그 표정 오이카와 씨는 무슨 뜻인지 알지만, 고양이는 무서워할 거라구. 조그맣게 말하자 오이카와를 쳐다보는 카게야마의 표정이 자기 얼굴이 어땠는지도 모르는 표정이다. 힘이 바짝 들어가 있잖아. 오이카와 씨 보는듯한 얼굴로 보란 말야. 


   “제가 오이카와 선배를 어떤 얼굴로 보는데요?”

   “음, 좋아 죽겠다고 외치는 듯한 얼굴?” 뭐, 아닐 때도 꽤 있지만.

   “하지만 고양이를 오이카와 선배만큼 좋아하진 않는데요.”

   “토비오... 그런 말 좀... 예고 없이 하지 마...”


   한두 번 한 농담이 아니었다. 오이카와가 이런 장난을 칠 때면, 늘 입술을 삐죽이며 제가 언제 그랬느냐고 발끈하는 카게야마가 귀여워 더 자주 놀리곤 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고양이 앞이라서 인가? 마음이 풀어져서? 고양이가 대화를 듣고 있는 것도 아닐건데 오이카와는 괜히 귀가 화끈거렸다. 


   얼굴에 힘을 조금만 풀란 소리야. 오이카와의 속삭이는 듯한 말에 카게야마가 의도적으로 힘을 풀려는 듯 얼굴 근육을 움직인다. 덕분에 표정이 한층 더 이상해졌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얼굴을 몇 번 조몰락거리자 그제야 조금 부루퉁한 정도의 얼굴이 됐다. 그래, 뭐 이 정도면. 생각해보니, 오이카와 씨 보는 얼굴로 고양이를 보면 그건 좀 싫을지도. 카게야마의 양 볼을 한번 꽉 눌러주고 오이카와도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평소보다 늦으시는 게 고양이 때문이었습니까?”

   “토비오가 우리 집으로 온 거, 고양이 때문이라며.”

   “그게 왜요?”

   “우리 바보 같은 토비오를 어쩌면 좋지? 토비오, 고양이랑 인사하고 싶었잖아. 오이카와 씨가 고양이랑 잔뜩 친해져야 토비오보고도 도망 안 갈 거 아냐. 다행히 오이카와 씨는 동물에게 제법 사랑받는 사람이거든.”


   샐쭉한 말투로 말하면서도 카게야마 때문에 한 달간 고양이에게 시간을 쏟았노라 고하는 오이카와의 표정만은 부드러웠다. 카게야마는 간질거리는 기분에 애꿎은 제 목만 만지작거렸다. 오이카와도 대답을 바란 건 아닌 듯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로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용히 고양이를 바라보는 사이 밥을 다 먹은 고양이가 또 슬쩍 오이카와의 눈치를 본다. 오이카와가 한번 쓰다듬자 아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가 보네. 오이카와가 쓰다듬어 보라고 권하자 카게야마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손을 뻗었다. 


   “어때, 기분?”

   “부드러워요.”


   기쁜 듯 카게야마의 눈 밑이 붉어졌다. 고양이는 카게야마의 손길에 움찔했지만 고맙게도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혹여나 긴장해 너무 거센 손길로 쓰다듬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했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간 카게야마의 손은 섬세하게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긴, 저 손이 얼마나 섬세한 손인지는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별걱정을. 오이카와는 쯧 하는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언제 친해지신 겁니까?”


   고양이와 인사하고 함께 집 근처 골목을 산책하는 중에 카게야마가 물어왔다. 


   “궁금하면 여기 손.”


   오이카와가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손을 꺼내 내밀자 카게야마가 냉큼 잡았다. 그렇게 궁금했나. 밖에선 스킨십 잘 안 하면서. 카게야마의 손은 이 서늘한 날씨에 한동안 바깥에 있었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해 기분이 좋았다.


   “한 한 달간 꾸준히?”


   셋째 날까진 도망가더니, 넷째 날부턴 눈치를 보고, 일주일 지난 후부턴 먼저 다가오던데. 오이카와의 이어진 말에 카게야마가 배신감 어린 눈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전 몇 달을 넘게 봤는데도 고양이가 먼저 다가온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꽤 속상한 듯 말투에서 서운함이 드러난다. 잡은 손도 오이카와의 손안에서 꼼지락거렸다. 아니, 근데 내가 아니라 고양이를 그렇게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고양이와 헤어지긴 했지만. 오이카와는 내심 억울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생긴 거 아닐까도 잠시 생각했습니다.”

   “뭐?”

   “말없이 귀가시간이 늦어지셨잖아요.”

   “음, 뭐... 고양이가 생기긴 했었네.”

   “고양이한테도 너무 상냥하게 굴진 마세요.”

   “그거 꼭 질투하는 말처럼 들리는 거 알아?”

   “맞는데요.”


   오이카와는 멈춰서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게 내가 생각하는 의미가 맞는 건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카게야마라 확신할 수 없었다. 설마 고양이랑 친해졌다고 나를 상대로 질투하는 거 아니야? 좀 전의 배신감 어린 표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는 거지? 어쩐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와 함께 하면서 같이 멍청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오이카와 씨는 토비오 때문에 고양이 보면서 방긋방긋 웃은 건데 설마 날 상대로 질투하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라면 혹시 고양이를 질투하는 거야?”

   “...설마 오이카와 선배를 상대로 질투하는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했잖아, 아까.”


   할 말이 없어진 듯 눈을 피하는 카게야마가 조금 어이없고, 많이 귀여웠다.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집 근처에 고양이가 많아서 좋다고 오이카와 씨 집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더라? 아까 고양이 보자마자 오이카와 씨는 안중에도 없던 사람은 또 누구지? 좀 전에 핸드폰에 고양이 사진만 몇 장씩 찍은 사람은 누구였어? 오이카와가 놀리듯 묻자 오이카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카게야마의 미간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저도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절 생각해서 하신 건 맞습니까? 아까 고양이 보는 표정 어땠는지 아세요?” 얼결에 해버린 말인 듯 카게야마가 말이 끝나자마자 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내 표정 봤어? 고양이만 보는 줄 알았는데.”

   “엄청 부드러운 얼굴로 보고 계셨어요.”

   “사실 조금 토비오 닮은 거 같아서. 그래서 많은 고양이 중에 그 친구로 고른 건데. 그렇지 않았어? 검고 인상 험악한 게.”


   농담처럼 덧붙인 말에 안 그래도 찌푸렸던 미간에 눈매까지 사나워졌다. 그래, 그 표정 말이야. 오이카와가 웃으며 카게야마의 미간을 살짝 두드린다. 


   “질투하면 안 됩니까?”

   “아니? 해. 해줘, 계속.”

   “놀렸으면서.”

   “그래서 그렇게 입술을 쭉 내밀고 있는 거야, 토비오?”

   “지금도 또,”

   “나도 하니까 계속해.”

   “오이카와 선배가 뭘 해요?”

   “질투. 우리 지금 질투 얘기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아까 잔뜩 찍은 고양이 사진은 세 장만 빼고 지우자. 조금 질투 나거든.”


   먼저 질투 난다느니 얘기해놓곤 고양이 사진 지우잔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다. “언제 또 찍을지 모르는데...” 웅얼대며 대답하는 카게야마의 핸드폰을 뺏어와 사진을 살펴보니 어차피 잔뜩 흔들린 사진뿐이라 건질 건 몇 장 없어 보였다. 오이카와가 흔들린 사진들을 차례로 지우면서 콧노래를 부르자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삐죽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귀엽기는. 그래도 오이카와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네가 뭔데 토비오가 그렇게 좋아하냐는 둥, 그래도 나보다 널 더 좋아하는 건 아닐 테니 우쭐하지 말라는 둥 유치한 대화를 한 건 절대 알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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