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2. 00:05 | Comment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분명 카게야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에 보던 잡지를 내려놓고 소파에서 막 일어선 참이었는데. 닫힌 욕실 문과 그 앞에 얌전히 놓인 카게야마의 가방을 황당한 얼굴로 잠시 바라보던 사쿠사는 그대로 소파에 다시 앉아 문을 뚫을 것처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있는 거냐고. 우리가 얼마 만에 보는 건데.


직계가족 외의 누군가와 자의로 함께 사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쿠사가 카게야마와 사귀게 되고, 대학에 들어오며 같이 살게 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치고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사쿠사는 믿고 있었다. 이번처럼 합숙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 특히 그랬다. 둘이 함께 살게 된 후에 합숙으로 이토록 한참 떨어져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음, 한참은 아닌가. 하지만 10일은 충분히 한참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한참이지.


아니면, 나한테만 한참인 건가. 사쿠사는 욕실에서 새어 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둘 다 배구선수인 만큼 합숙으로 며칠 집을 비우는 일이 드문 건 아니었다. 서로 사나흘 정도였지만. 다행히 둘 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보니 대회가 있어도 오래 얼굴을 못 보는 일은 적었다. 그래서 견딜 만했는데. 이번엔 사쿠사의 합숙이 끝나는 날 카게야마의 합숙이 시작되는 식의 일정 탓에 거의 열흘간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통화야 하고 있었지만 카게야마도 사쿠사도 핸드폰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닌 데다 합숙 땐 그 정도가 더했기에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합숙 땐 서로 연락을 자주 못 해도 이해하자는 규칙 아닌 규칙을 세워둔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오늘이 바로, 카게야마의 합숙이 끝나 10일 만에 얼굴을 보는 날이었던 건데.


 

문을 노려보던 사쿠사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더 험악해졌다. 어떻게 오자마자 꾸벅 인사만 하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냐고. 사쿠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인사할 틈도 없었다. 내가 안 보고 싶었나? 설마 이어지던 합숙 기간 동안 귀찮은 사람 없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나? 혹시 합숙 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 사이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니겠지? 만약 누가 고백 해와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마음 한구석에선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굳게 닫힌 화장실 문을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잖아. 보기 싫은 사람 피해 들어가듯 어떻게 갈아입을 옷도 안 챙기고 바로. 아, 화장실에 속옷이랑 편한 옷 몇 벌 가져다 놨었나. 이럴 줄 알았으면 가져다 두는 게 아니었는데.


잔뜩 찡그린 얼굴로 별생각을 다 하고 있자니 어느새 물소리가 그치고 잠시 후 욕실 문이 열렸다. 사쿠사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는 카게야마를 쳐다봤다.


“왜 그러고 계세요?”

“왜 이러고 있는 것 같은데.”

“화장실 쓰시게요?”


답답함에 사쿠사의 미간이 한층 더 패였다. 사쿠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게야마 앞에 섰다. 이 와중에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여전히 예쁘단 생각부터 드니 환장할 것 같았다.


“너는 안 불안해?”

“뭐가요?”

“합숙하는 동안 내가 다른 사람이랑 널 불안하게 할 만한 일이 있지는 않았을지 그런 거.”

“안 불안한데요.”

“왜 안 불안해?”

“무슨 일 있었습니까?”

“있었을 리가 없잖아.”

“그럴 거 아니까요.”

“나한테 별 관심 없어서는 아니고?”


카게야마의 얼굴에 한순간 짜증스러움이 서렸다. 사쿠사도 질세라 한껏 짜증 난 얼굴을 했다.


“왜 그렇게 봐.”

“왜 그런 말을 합니까? 저희 사귀는 사이잖아요.”

“네가 오자마자,”

“키스하고 싶어서 오자마자 씻은 건데.”

“뭐?”

“씻고 하는 걸 더 좋아하시니까 오자마자 씻은 거란 말이에요.”


다시 보니 짜증스러운 얼굴이 아니라 심통 난 얼굴 같기도 했다. 사쿠사도 순식간에 표정이 풀렸다. 표정을 제 의지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너는 날 잘 아는 건지 아닌 건지.”

“잘 아는데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들어오자마자 씻었잖아요.”

“모르는 것 같은데.”


카게야마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찡그리고 사쿠사를 바라보다 갑자기 몸 이곳저곳에 코를 대고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혹시 저한테 아직 땀 냄새납니까?” 묻고는 다시 킁킁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사쿠사가 어이없음에 웃음을 흘렸다. 막 씻고 나온 사람한테서 무슨 땀 냄새가 난다고. 게다가 카게야마는 꼼꼼하게 씻는 편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냄새를 맡아보던 카게야마가 “안 나는 것 같은데…” 하며 사쿠사를 바라봤다. 이건 아닌 것 같고, 자긴 정말 모르겠으니 직접 말해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들어오면 바로 나한테 왔어야지.”

“더러운 거 싫어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날 모른단 거야.”

“아닌데요.”


카게야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뚱하게 대답했다. ‘너 날 모르네.’ 하는 말에 울컥하는 카게야마가 웃기고 귀여웠다. 물론 사쿠사가 더러운 걸 정말 싫어하기야 했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사쿠사를 더 겪어야 그것도 카게야마에게는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될 건지.


“너한텐 참을 수 있다고.”

“싫어요.”

“뭐?”

“싫은데 참으시는 거 싫다고요.”


이번엔 사쿠사가 당황했다. 절로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지금 뭐라고… 곧게 부딪혀오는 카게야마의 시선이 언제나 그랬듯 거짓도, 망설임도 전혀 없어서 사쿠사는 대답하는 것도 잊은 채 카게야마를 쳐다보기만 했다. 사쿠사를 향한 카게야마의 마음이 정직하게 다가와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동안 함께 사쿠사를 쳐다보던 카게야마의 고개가 천천히 사쿠사와 같은 각도로 꺾였다. 문득 웃음이 나온 사쿠사는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내가 너 때문에 싫은 거 참는 게 싫다고?”

“네.”


사쿠사가 이번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왜 웃으시는 건데요.”


사쿠사가 자길 놀리는 거라 생각한 듯 카게야마가 불퉁한 말투로 물어왔다.


“그럼 더 그러면 안 됐지.”

“네?”

“너 안고 싶은 거 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왜 욕실부터 들어가냐고.”


카게야마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대답하지?”

“그치만 더러우니까,”

“더러운 거 참는 게 너 안고 키스하고 싶은 거 참는 것보다 훨씬 할 만하단 말 하고 있는 건데.”

“어…”

“어, 는 뭐가 어, 야. 이제 뭐 해야겠어?”


따뜻한 물로 막 씻고 나와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이며, 제대로 털지 않아 머리에서 몇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며 뭐 하나 사쿠사의 눈에 색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사쿠사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도 사쿠사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카게야마가 멍하니 눈을 꿈벅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참는 건 조금은 즐거웠다. 기다리는 행위조차도 카게야마에게라면 참을 수 있었다. 사실 참을 수 있게 된 건지, 카게야마라면 그저 괜찮아진 건지 사쿠사조차 이젠 헷갈렸다. 뭔들 어떤가 싶지만.


카게야마가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사쿠사를 잠시 쳐다보다 알았다는 듯 “아!” 하고는 팔을 활짝 벌렸다. 저거 뭐야, 안기라는 거야? 가끔, 사실 자주 저렇게 귀엽게 구는 카게야마에 사쿠사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저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으면서 안기라고 뿌듯한 얼굴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사쿠사가 웃자 또 놀리는 거라 생각한 건지 “왜 또 웃어요.” 불평하며 팔을 내리려는 카게야마의 허리를 잡아채 품에 안았다. “역시 이쪽이 안정적이잖아.” 카게야마의 귀에 대고 사쿠사가 낮게 말하자 카게야마가 발끈하며 “저도 안 작아요.” 말해온다. “어. 너, 커. 나한테 딱 맞을 만큼.” 사쿠사가 대답하자 사쿠사의 품 안에서 작게 움찔한 카게야마가 “그거 작단 소리 아닙니까?” 하며 몸을 떼려고 했다. 사쿠사는 카게야마의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줄까 하다가 얌전히 힘을 풀었다. 기다렸다는 듯 카게야마가 못마땅한 얼굴로 떨어져 나와 사쿠사를 마주하자마자 카게야마의 턱을 들어 올려 키스할 듯 가까이 다가갔다.


“거봐, 이 각도 딱이잖아.”


카게야마의 얼굴이 사쿠사에 의해 들어 올려져 사쿠사를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음, 역시 카게야마의 올려다보는 얼굴은 예뻤다. 그러고 보니 첫 합숙 때 반한 것도 그때였나. 카게야마가 다시 발끈하기 전에 입술을 마주 댔다. 마침 카게야마의 입도 벌어져 있었고.


너무 그리웠다. 겨우 며칠 못 본 건데도 이렇게 황홀할 줄은. 사실 사쿠사에게 ‘겨우’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아니긴 했다. 카게야마가 살며시 사쿠사의 뒷머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이 사쿠사보다 별로 작지 않다는 걸 어필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뻔히 보인다고. 사쿠사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 삼키며 잠시 입술을 떼자 카게야마가 색색 숨을 내쉬며 사쿠사를 바라본다. 형용할 수 없이 야한 얼굴이었다. 사쿠사가 다시 달려들자 카게야마가 “잠시만요.” 하며 막아왔다.


“왜. 나 급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방으로 가요.”

“멀어.”


다시 키스하려는 사쿠사를 이번엔 카게야마가 손으로 막았다.


“너도 급하다며.”

“춥다고요. 저 속옷 안 입었어요.”

“뭐?”


화장실에 속옷 없나? 아닌데. 분명 아까 가져다 놓은 걸 후회까지 했다고. 아… 일부러? 사쿠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카게야마의 바지를 바라봤다. 카게야마가 아래를 향한 사쿠사의 고개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덕분에 사쿠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게야마의 얼굴로 향했다. 부끄러워하는 얼굴일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아하, 아까 내가 턱 들어 올려 키스한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거지. 금세 사쿠사의 행동을 따라 하는 카게야마가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급하다고 했잖아요. 씻을 때도 그랬다고요.” 카게야마의 눈에서 어떤 불빛이 보였다. 아마 저 불빛은 사쿠사의 눈에도 있겠지.


"이건 네 미스야."

"네?"


사쿠사가 카게야마를 안아 올려 소파로 향했다. 카게야마는 사쿠사가 이렇게 번쩍 들어 올리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침대까지 가라고.”


카게야마를 소파에 눕히고 바로 입술을 부딪쳤다. 급하단 말이 사실이었는지 카게야마도 평소보다 적극적이었다. 아,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사쿠사가 입술을 떼자 카게야마가 왜 그러냐는 듯 다시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아마 카게야마보다 사쿠사가 더 급한 상태겠지만 확인해야만 했다.


“나 보고 싶었던 거 맞지?”


귀찮다고 생각해도 별수 없었다. 이렇게 확인해놔야 마음이 안심되니까. 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쿠사고, 사쿠사와 사귀겠다고 결정한 이상 카게야마도 이런 사쿠사를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불안한 눈빛으로 사쿠사가 카게야마를 바라봤다. 남이 보기엔 그저 이글대는 눈빛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안의 불안함이 보일 터였다. 카게야마가 “제 말 뭘로 들으신 거예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떤 대답.” “키스하고 싶어서 들어오자마자 씻었다고 했잖아요.” 그러곤 작게 중얼거렸다. “보고 싶었다고요. 10일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떨어져 있었던 날짜를 정확히 기억할 만큼, 10일이나 라고 표현할 만큼 그날들이 카게야마에게도 길게 느껴지긴 했던 거라고 생각한 순간 사쿠사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저토록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입술을 바로 삼켜버리고 싶기도 했고 이번에야말로 부끄러운 듯 사쿠사를 비껴간 시선을 붙잡아 한참을 바라보고 싶기도 했다.


사쿠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자 대답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생각한 건지 카게야마가 “불안하지 않다고 해서 보고 싶지도 않은 건 아니라고요.” 덧붙여왔다. 이제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사쿠사가 그대로 다시 키스하자 카게야마가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불편한 것 같았다. 반대로 사쿠사는 만족스러움에 절로 목에서 그르릉대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10일 치를 한 번에 해도 괜찮겠지, 카게야마가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사쿠사가 자리를 잡으며 목을 깨물었다. 카게야마의 몸에서 나는 바디워시 향이 이젠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둘 모두에게 익숙해졌음에도 목을 깨물자 확 풍겨오는 향이 또 못 견디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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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야마 생일 합작 우리토비오2에 참여한 글입니다.

토비오 생일 너무너무 축하해!!!!! 여전히 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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